노무현.

Let me Tell U Something 2009. 5. 23. 17:34 Posted by clotho


  제가 이 분을 직접 본 일이 한번 있었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때로 기억이 되는데 어디 멀리 지방으로 수학여행 같은 것을 다녀오던 고속도로였어요. 저는 관광버스의 왼쪽 뒷편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창밖으로 승용차 한대가 거의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뒷자리에는 당시 청문회 때문에 얼굴이 알려진 노무현 아저씨가 앉아 있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신기해 하면서 왼쪽 창으로 쏠려서 그 분에게 손짓을 했는데 인자하신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시들해져서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저는 마지막까지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돌릴때까지 저에게 맞춰진 눈길을 거두지 않으셨드랬죠.


  저는 1999년 6월에 한국을 떠나 2006년 5월까지 만 7년을 호주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을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의 시스템이 제게는 견디지 못할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2002년 12월에 잠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귀국하는 날부터 아버지랑 싸우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골수적인 한나라당 지지자 이셨는데 당신의 정치적 이념 때문에 자식을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분이셨죠. 그때는 저도 참 유도리가 없었던 것이.. 이회창씨를 찍겠습니다 하고는 노무현에게 투표를 해도 될 것을 귀국하는 날부터 아버지와 충돌을 빚었던 거죠. 무조건 노무현 찍겠다고.


  선거 당일 아침에 투표소에 가서 도장을 찍기 전까지 갖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연하게도 노무현을 찍었어요. 투표소를 나와 누구 찍었냐? 라고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노무현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곤 그 날 저녁 성난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었습니다. 12월 31일날 다시 호주로 출국하는 공항에서 게이트를 나서는 제 등뒤로 아버지는 "너 앞으로 학비고 뭐고 없을줄 알아!" 라는 소리를 하셨어요.


  저는 아직도 그 분을 지지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지금은 그 대선 당시의 뜨거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당신은 언제나 어릴적 그 온화한 미소를 띈 분이셨거든요. 뇌물 때문에 수사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실망도 했지만 그 와중에 종종 국민들에게 보내는 피드백은 제가 믿는 믿음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었습니다.


  시련이 지나면 다시 웃을 날이 온다고 믿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슬픕니다. 당신을 이렇게 잃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죠. 난 다시 어릴적 보여주셨던 그 미소를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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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calypso 2009.05.23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안죽고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자꾸 죽어나가네요.
    MB는 말은 안해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듯...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노무현 당신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그나마 밝았었습니다.

  2. 2009.05.24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웬리 2009.05.24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고향에서 농사 지으면서 살겠다는 사람을...
    답답하네 정말...

  4. BlogIcon iso 2009.05.29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도 그 당시 대선때 클로소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집안에서는 무조건 한나라당찍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노무현을 찍겠다며 박박 우겼었죠.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냥 이회창 찍었다고 하고 노무현 찍으면 되는데 구지 그렇게 싸워야 했을까 싶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딱 '나'이기 때문이에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맞는 건 맞는거고 하는 건 하는 건 하는 거고, 속임수라는 건 없는거거든요.

    아마도 락 스피릿과 보헤미안의 마음을 지닌 우리들은 다 그런거 아닐까요??

    이상, 보헤미안과 된장녀의 인생 최대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한 처자입니다.

    • BlogIcon clotho 2009.05.31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소님도 저도 그닥 정치적이지 못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냥 능글능글하게 대처했어도 됐을 것 같은데 말이죠.